내 고향은 경상북도 문경세재가 있는 문경이다.
문경군 가은면.....
지금은 읍이 되었지만
은성광업소가 폐광이 된 터라 예전 같지는 않지만
산세가 참 아름답다.
조상 몇대로 살아 온곳이라 선산도 있고 일가 친척들이 많이 계신다.
버스로 이십분의 거리 마성은 외가가 있다.
만석꾼 살림을 하셨던 외증조부께서는 자손들을 위하여
초등학교를 세우셨다.
마성초등학교.........
어린시절 외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난 모든사람들에게
그분의 막네손녀 딸 외증손주로 특별한 아이로 자랐다.
전쟁으로 많은 식두들을 잃은 외가에
어린 생명인 우리 형제들은 모든이 에게 귀한 희망이었다고 한다.
환갑이 넘은 사촌언니는 늘 그때의 암홀했던 이야기를 하시고
내 어린시절을 말씀 하신다.
간식이 귀했던 시절이라 감나무가 많은 외가엔 꽂감이 당연 귀한 간식이었다.
꽂감을 유난히도 좋아해서 잘 먹었다고 한다.
외할머니께선 곳간 항아리에 손주들을 위해 꽂감을 저장해 주셧다.
큰 항아리속에서 꺼내어 주시던 꽂감.......
처마에 아름답게 매달려있는 홍색의 꽂감
속은 홍시가 되어 달콤한 그맛
꼬쟁이에서 하얀 분이 나도록 잘 말려진 꽂감
난 이모든것이 기억속에 있었다.
언제 부터인가
감나무도 늙어서 감이 열리지 않던 무렵 우린 꽂감을 잊었다.
울산에 계시는 이모님의 칠순 생일때
한분 계시는 외숙께서 나를 주차장으로 부른다.
"영숙아 꽂감이다. 너의 차에 넣어 두어라."
허름한 보자기를 내미신다.
마성에서 직접 만들어 오신것이라 하신다.
난 그 보따리를 안고 한참 말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바뿐시간들 속에서 흔하게 많은 간식들
고급양과에 길드려지고 외가를 잊고 있었는데
외숙께선
꽂감을 빨고 다니던 조카를 잊지 않고
많은 시간을 보내신것이다.
내 행동에 외숙모께서 말씀 하신다.
"처음 삼춘이 감을 깍으라고 하기에 찼아 오지도 않는 조카딸 뭐 하려 꽂감 만들라 하야구.........
속상했는데 조카를 보니
기분이 좋구만.........."
"외숙모 고마워요. 참 많은 추억이 많아요."
난 말을 잇지 못하고 보따리에 얼굴을 묻었다.
100개 되는 꽂감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한개씩 먹으며
많은 추억을 세길수 있었다.
요사이
시중에 흔하게 다양한 꽂감을 본다.
산지가 줄비한 꽂감들......
그거 아세요?
꽂감은 역시 상주꽂감이란 상표가 최고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