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문경 외가에서 온 전화
"숙아 , 이달 20일 셋째 결혼이다. 꼭 얼굴 함 보자. 누님댁에 전화가 않되네 열락해라.."
"엄마한테도 열락 할께요. "
아침 식사 시간 이라 그런것 같아 한참뒤 언니의 폰으로 열락을 했다.
사실 요즘 이모님께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늘 엉뚱한 말씀을 하신다.
치매로 사리분별도 어두어 지셨지만 과거 속에 갇쳐서 계신다.
지난시절 힘들었던 일들을 되세기고 계시니 점점 병세는 악하가 된다.
참 모든 친척들에게 늘 관대 하셨던 분인데........
"아가씨 지금 바빠? 어머니 가고 싶어 하는데........."
사실 요즘 나역시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 고생을 하고 있다.
작은 일에도 피곤하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식구들에게 역시 늘 짜증이다.
그러나 오시고 싶어 하시는데 거절은 못 하였다.
한참만에 도착한 이모 며칠전 보다 까칠해 보였다.
"아가씨, 우린 문경 못 가. 울산에서 결혼식과 서울에서 손님이 오셔.."
90을 바라 보는 이모께서 가시겠다고 나서신다고 한다.
참 난감한 일이다.
나 역시 혼자의 여행도 힘든 터인데.........
작은 오빠 역시 서울에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고 난감했다.
그래서 하는수 없이 내가 모셔 갈테니 그리 하자고 했다.
오래만에 나오셨으니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늘 하는 이야기 외가 이야기다.
만석군 살림을 살던 외가, 전쟁때 외삼춘께서 행방불명이 되시고 할머니와 여섯 여자만 남게 되어
결국 만석군 살림은 야금 야금 줄었다고 한다.
무슨 일만 있으면 땅을 매매로 내어 놓으시고 그 땅은 조상 대대로 내려 오는 땅들이 남의 손에 넘어 가는것이 억울하고 아까워
작은집 숙모님께서 억척스럽게 사드리고 했다.
그런데 이모의 치매로 80이 넘은 외숙모님께 닥달이다.
그래도 설마 했는데 ........
이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땅을 다 가로챘다고 한다.
교편을 잡고 계시던 외삼춘 급료만으로 살수 있었지만
그시절 새마을 운동의 선두자가 되어 공부를 하시고 일본에서 새품종 사과나무를 묘목을 드려와 그 주위 모두를 사과과수원으로 만들어
지금은 "영순사과."로 서울 백화점에서 높은값을 받고있다.
문경 그 일대에서 그분께 모두 감사하고 있는데 말이다.
과수원을 넓혀가면서 새품종을 말씀해주시던 그 모습이 아직 나에게도 남아 있다.
홍옥이 유일한 품종이던 시절에 새품종 다른 맛은 어린 나에게도 황홀했었는데..........
90이 다 되신 이모께서 친정을 가시겠다고 하니 걱정이다.
......
어찌해야 좋을까
치매
누구나 고개를 절래절래 하면서 피하고 싶어 하는 병
그러나 도적 같이 찼아오니 장담 할수 없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