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그렇게 추위에 몸을 움추리게 하더니 일기 예보처럼 포근한 날씨에 입고 다니던 파카가 무겁게만 느꺼진다.
시부님 세상 떠나시고 집에서 지내는 구정이면 외로와 하는 남편 눈치 보기에 친정집 삼춘댁과 이모님댁 나들이는 감이 입밖에도 내지 못하고
그렇게 지낸지 수년이다.
가까이 계시는 오빠집에는 설 전에 미리 인사를 하고 부산에 계시는 삼춘께는 전화만 드렸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나 자신도 익숙해 지는듯
그래도 큰삼춘 생전에 계실때는 아들 앞세워 나들이 했지만 목회하는 사촌 따라 숙모께서도 기흥으로 가시고는 발길이 멀어졌다.
작년 구정 부터는 사위가 세배를 오고 올 구정도 사위와 딸이 오게 되니 다행이다.
구정날 아침 반주로 소주 한병을 다 비운 남편은
"애들 언제 온다고 해.."
사돈댁 큰집과 본가 제사가 끝나고 오후 서너시가 되어야 오는걸 뻔히 알면서도 묻어 본다.
설거지를 하고 어제 해 놓은 만두 피를 꺼내어 만두를 빗기 시작했다.
그 옛날 내 젊은시절
일본식 관사였던 시댁은 낡은집이라서 옷을 몇겹 끼어 입고 설준비를 하지만 추위에 힘들었다.
지금 이혼을 하고 그집을 떠난 동서와 그 힘들어던 시집 살이
일이 서툰 나지만 그냥 있을수만 없었다.
이틀을 앉을사이도 없이 꼬박 늦은 밤까지 서서 늘 새벽 2시가 되는것은 예사였다. 시모님을 도와서 함께 해야 했고
제사를 지내고 아침을 먹을때는 밥 그릇은 32개를 챙겨야 했다.
구정 아침이면 작은집 식구들 열분이 넘는 식구들과 사촌시숙님댁 대여섯 식구들
제사도 없으면서 구정 아침, 그것도 제사상을 다 차리고 기다려야 나타나는 그집 식구들
며느리가 둘이나 있는데도 어쩌면 그럴수가 있는지 본인들 편리한것 밖에 모르는 사람들 이었다.
오후가 되면 시고모님댁 식구들 세배를 맞이 해야 했다.
고모님들 사위 보시고 나면 좀 나을까 했지만 온식구가 와서 늦은밤까지 마시고 유흥하는 풍습에 난 넋을 놓았다.
구정 5일 휴가는 시댁에서 그렇게 보내야만 되는줄 알았으니.........
울산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 딸애가 학교에 등교하여도
"애 학교 하루 쉬라."
"새벽에 가라."
결국 난 혼자서 아이들과 장전동에서 막차를 타고 울산으로 와야했다.
일만에 양심도 없던 시댁 식구들.
지난 시절 힘겹던 그시간을 난 의무감에 꿋꿋이 지내 왔다.
결혼하고 첫해
설날 오후가 되어도 친정집 세배는 꿈도 못 꾸었다.
친정 삼춘댁에서는 이틀 삼일을 벨 소리만 나면
"영숙이 오는가 빨랑 인터폰 받아...." 그러시기를 몇년을 하시다가 삼년째가 되어 포기 하더라구 하셨다.
왜그렇게 무지막 하게 시집살이를 했는지
하기야 본가에서 5분 거리 이웃에 계시던 친정 당숙아저씨댁에도 못가보고 수년을 지냈으니
시누이 시동생들 다 결혼하고 시간이 여유로운날 오후 아들 손을 잡고 아저씨댁으로 갔다.
골목 들어서고서야 친정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너의 당숙 아파트로 이사했다."
오늘 처럼 이런날 황당해 할까 싶어 하신 말씀이다.
대문 앞에서 돌아서는 내 맘은 참 쓸쓸했다.
만두를 빗는 내내 내 생각은 과거에 멈추었다.
난 사위에게 청을 하였다.
집안 식구들이 많이 계시지만 설날 해 떨어지기 전에는 새배 오라고 하였다.
좀 당당하고 싶었다.
남편은 또 묻는다." 애들 전화해봐. 언제 올런지."
나 역시 폰을 옆에 두고 눈길은 그 곳에 가 있었다.
"내가 친정 부모들께는 그렇게 무지막 하게 하고 딸은 내내 기다리네."
나도 두분의 자식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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